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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써라/제주 일상

[제주 일상] 11월 한라산 둘레길_천아숲길, 동백길

by ribonko 2020. 11. 28.

한라산 단풍이 아쉽던 차에, 제주의 단풍은 '천아숲길'이 유명하다는 글을 보고 방문.

평일임에도 숲길 입구에서 1km 못미친 지점부터 주차로, 오가는 차량으로 아수라장이었다. 

2km 넘게 떨어진 천아숲길 버스 정류장부터 주차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몰려왔지만 운 좋게 길 한켠에 주차할 수 있었다. 돌아갈 때 보니 이 길을 걷는 것은 좀 무리인 듯. 

여하튼, 관광객들과 도민 모두에게 유명한 명소인 듯 해서 기대감 상승. 

 

천아숲길 검색하면 거의 첫 화면을 차지하는 사진.  

요때까지 좋았다. 엄청나게 큰 돌이며, 나름 울긋불긋한 단풍까지. 

그치만 이 돌을 건너 본격적으로 둘레길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엄청난 경사의 계단이 나온다. 

키가 작은 사람들은 다리가 땅에 닿지 않을 정도의 계단까지. 

그 계단을 오르고 나면 평지를 가장한 꾸준한 오르막 길이 계속된다.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경치도 같은 장면이 계속된다. 

길도, 경치도 계속된다, 계속된다... 그러다 보니 걷는데 잠이 몰려온다. 

같이 간 친구가 졸립다고, 하지만 시작했으니 완주하자며 계속 걷자던 나에게도 졸음이 몰려온다. 

이 비슷한 경험이 전에도 있었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 

내려올 때 다들 혼자 걸으며 말이 없어지는 그 길.

나는 계속 걷고 있는데 같은 주변 풍경이 6시간씩 펼쳐지는 마성의 그길. 

이렇게 걷다가는 10분 안에 둘 다 둘레길 한 가운데서 잠들 것 같아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 

1시간 30분 가량 걷다 되돌아 가니, 완주 예정시간이었던 3시간 가량을 걸은 셈이나 마찬가지여서 이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고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한라산 둘레길도 여러 코스가 있었다. 

이번엔 간만에 서귀포도 가볼 겸, 동백길을 가보기로. 

 

서귀포 자연휴양림, 무오법정사, 돈내코 탐방길 총 3곳에서 시작 또는 마무리할 수 있는 길로 보통 4시간 정도를 예상하는 듯 했다. 하지만 차를 가져가자니 양 끝을 연결하는 버스를 찾을 수가 없어, 반을 나누어 각각 걸어보기로. 

게으름을 피운 탓에 자연휴양림부터 걸으려던 생각을 바꾸어 무오법정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여기서부터 시작. 

 

안내소에 출입명부를 작성하고, 걷기 시작하니 오르막길부터 나온다. 

약각의 불안감이 스멀스멀하던 차에 짧은 오르막이 끝나고, 평지를 좀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한라산 둘레길 입구가 나온다. 

이제 본격적인 숲길 시작. 

 

초반의 우려와는 다르게 길이 다양하고 예쁘다.

조릿대 가득한 길(언젠가 이 지구는 바퀴벌레 아니면 조릿대에 점령당하지 않을까 싶은.)

마른 낙엽 가득한 길, 동백나무 군락지, 중간중간 건너야 하는 계곡 길 등.

걸어도 걸어도 다른 숲들이 이어지니 걸을 맛이 난다. 

 

 

동백길에도 일제 강점기와 4.3의 유적들이 곳곳에 있다. 

예전에 제주 토박이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4월 3일이 되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모두 제삿날이라고. 

나와 상관없는 근대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그 이야기를 들으니, 실제 제주민들의 삶에 깊숙하고 날카롭게 자리잡고 있을 4.3이 다르게 다가왔었다. 

1시간 30분을 약간 넘게 정말 빠르게 걸어서, 5.5km 구간인 시오름 삼거리에 도착. 

여기서 30분 정도를 더 올라야 시오름에 갈 수 있다는데,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기로. 

되돌아 오는 길에 오토방 3대를 만났다. 그 좁은 숲길에. 

좀 황당하다 생각해서 예약안내센터에 전화하니, 제주시에서 출입을 막지 않은 모양이다. 

시에 민원을 넣으라는데, 제주의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들이 마련되고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돌아 입구에 도착하니, 해가 넘어가네. 

오늘 하루도 감사!